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문단 편집) == 줄거리 == [include(틀:스포일러)] 이야기는 잘 나가는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좌천]][* 서울에서 일하던 관료였는데, 일에 열중하다가 장관의 초도순시에 나와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골 군청의 총무과장으로 좌천된다.]으로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시골]]로 이사를 오게 된 [[국민학교]][* 이 시기에는 [[초등학교]]라는 말이 아직 생기기 전이었다. 국민학교는 '''[[1996년]]에 초등학교로 전환'''되었다.] 5학년 소년 한병태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당연히 학교도 시골에 있는 조그마한 학교로 전학을 오는데, 서울에서 유복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며 명문 초등학교에 다니던 병태에게 이사온 동네는 촌동네, 학교 역시 초라한 시골 학교로만 비쳤다. 그리고 도시 아이를 외국인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보는 반 아이들도, 서울 학교 선생들과 달리 학생들에게 좀체 살갑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교사들도 못마땅하기만 했다. 그런데 전학을 온 지 얼마 안 되어, 그는 무척이나 이상한 아이를 보게 된다. 전학을 온 학급의 급장([[반장(학교)|반장]])인[* 급장이라는 말은 1970년대부터 반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반의 1짱 아니, 전교 1짱 '''엄석대'''였다. 그는 6학년이 아닌 5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전교(모든 6학년보다)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학급의 모든 아이들은 석대를 두려워 하였고 학급의 모든 대소사는 철저하게 석대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담임을 비롯한 [[교사]]들은 이런 석대를 무척이나 훌륭한 아이로 평가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석대는 그것을 바탕으로 폭력과 회유를 적절히 섞어가면서 사실상 학급의 [[왕]]노릇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그런 석대가 두려워서, 그리고 '''[[학습된 무기력|다른 학생들도 모두 그러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석대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석대는 새롭게 같은 반이 된 병태 역시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만들려고 한다. 평등 주의자인 병태는 석대의 독재에 반감을 품고 저항하지만, 이미 학급의 상황은 병태 혼자의 힘으로 대적하는것은 도저히 무리였다. 급장 선거도 결국 석대의 손아귀에서 굴러갈 뿐이고, 심지어는 서울 및 모범생 출신이라 병태가 자신있었던 성적조차도[* 당시에는 수도권 학교와 지방 학교의 격차가 상당히 심한 시절.] 이기지 못해서 등수에서 밀려난다. 분명 규칙위반은 맞지만 다른 아이들은 그냥 넘어가는 사소한 것들도 병태만은 칼같이 고발이 들어와 혼나게 되었고[* '조금만 손톱이 길어도, 조금만 이발이 늦어져도'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일이 쌓이고 쌓이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병태는 교사들조차 그의 이야기만 나오면 '쟤는 왜 저런다니?' 취급하는 골칫거리가 되어버린다. 성적도 떨어지고, 부모님에게 도움을 청해봐도 오히려 [[2차 가해]]만 당하며 힘겨운 학교생활을 이어나가던 병태는 결국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미화시간에 창문을 닦는 일을 맡았는데, 병태가 아무리 열심히 닦아도 석대는 꼬장을 놓으며 보내주지 않았다. 이때 병태가 석대에게 투항하며 드는 심경 변화 묘사가 일품이다.] 엄석대에게 복종한다. 아예 다음날 [[샤프 펜슬]]까지 뇌물로 바쳐가며 [[견마지로|석대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러자 석대는 병태에게 자신의 권력을 일부 맛보게 해주며 '''아예 자신의 오른팔 자리에 앉혔다.'''[* 여기서 엄석대의 용인술이 드러난다. 나름대로 집안도 부유하고 반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을 굳이 적으로 돌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불공정했던 싸움 권력서열도 다시 바로잡았다.[* 친구들과 싸움에서 이기면 권력서열이 올라가고 지면 내려가는 구조였지만 병태가 싸울 때는 싸움 구경을 하는 애들이 비겁하게 뒷치기를 하거나, 적 아이를 일방적으로 응원하며 병태의 기를 꺾어 결국 병태가 질 수밖에 없게 조장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서열도 거의 꼴찌에 가까운 수준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병태가 충성을 맹세하자 반대로 석대가 대놓고 병태를 응원하며 상대 아이의 기를 죽게 만들어서 병태를 오히려 실제 싸움 실력보다 조금 더 위의 서열로 올려놓았다.] 사실상 '''넘버 2가 된 것이다.''' 본문에서는 '싸움 서열도 예전보다 두세 단계 오른 '''12번째'''로 올라섰다'고 나오는데, 한 반에서 60명 가량의 학생들 중 12등이면 20~30명 수준인 요즘 학급으로 치면 대략 '''5짱''' 정도. 석대는 병태에게 다른 아이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당번, 셔틀짓 등에서 제외시켜주는 특권과 이익을 안겨주었다. '''"내가 주는 물건은 받지 않았고, [[조공|어쩌다가 한 번 받게 되면 반드시 배로 갚아주었다]]."'''라고 한다. 그런데 결국은 석대가 다른 학생들에게 뺏은 것을 준 것이라서 병태는 내심 찝찝하게 생각했다. 이 내용을 통해 병태가 그만큼 석대의 권력에 위협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비교적 석대 치하에 머무른 시기가 짧아 자유에 대한 갈망도 더 컸던 병태는 '''반을 넘어 사실상 학교 전체를 적으로 돌린 채, 한 학기 가량을 버텨냈다.''' 비록 한 번 꺾였지만, 가만히 놔둔다면 언제 다시 반란의 불씨가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물론 석대가 세워놓은 왕국이 너무 거대하고 강해서 고작 병태 혼자는 흔들 수 없었다지만 아예 이런 시도 자체가 없었던 지금과는 달리 외부의 저항을 받아본 석대 입장에서도 병태는 나름대로 골치아픈 존재였던 것이다.[* 작중 주인공이자 화자가 병태이기에 석대의 심리는 전혀 묘사되지 않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석대 입장에서 병태란 인물이 부담이 전혀 되지 않을 리가 없다. 병태는 자신의 왕국에 속한 이도 아니었고 머리도 좋았으며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공무원]]. 좌천되었다고는 하나 당시 시대상 굉장히 좋은 직업이었고 위세도 있었던 직장이었다. 그런 석대 입장에서 병태가 자진해서 항복해왔을 때는 반역 의지를 꺾어놓기 위해서 잘해준 것이 분명 더 컸겠지만 내심으로는 자기를 어느 정도 흔들어 놓을 가능성이 있는 병태마저 자기 휘하가 되었다는 기쁨도 또한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병태같이 영리하고 총명한 아이는 무작정 적으로 돌리기엔 너무 쓸모있고 유능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을 들여 조율하다시피 괴롭히며 그 기세를 확실히 꺾어주고, 자기 편이 되자 많은 특혜를 주며 특별대우까지 해주면서 우대한 것이다. 작중에서 꽤나 소름끼치는 부분인데, 실제로 많은 독재자들이 자신의 반대세력에 있다가 자신의 편이 되는 이들에게 엄청난 특권을 안겨주던 것과 매우 흡사하다. 석대가 주는 달콤한 특권에 맛이 들려 병태도 점차 급우들과 동화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병태는 수학 시험시간에 석대의 측근 박원하의 이상한 행동을 목격하게 된다.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자기 이름을 지우고 석대의 이름을 쓰는 것이다. 까막눈이 아닌 이상 자기 이름조차도 쓸 줄 모르는 바보는 없었기에 병태는 남몰래 원하를 찾아가 꼬치꼬치 캐묻고, 원하는 망설이다가 석대의 [[부정행위]] 사실을 얘기해준다. 짧은 부정행위 과정을 살펴보자면, 수학 실력이 부족한 석대와 수학을 잘 하는 원하가 나란히 수학시험을 친다 → 원하는 시험지 이름을 석대라고 적어서 냈고, 반대로 석대는 원하의 이름을 적어서 내는 성적 교대. 사실 석대가 아주 열등생은 아니어서 과목당 80점 정도는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두 과목 정도는 대리시험 셔틀을 두지 않고도 90점 이상의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얼마 전 시험에서는 반에서 국어를 가장 잘하는 황영수가 국어 대리시험을 쳤다'는 내용을 참고하면 아마 석대가 90점 이상 받는 과목은 사회, 자연(현재의 과학)으로 추정.] 물론 [[대리시험]] 셔틀이 있는 과목은 대충 준비 하고, 셔틀이 없는 과목만 올인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나마도 석대의 실제 나이를 고려해보면 그의 실체는 사실상 열등생에 가깝다. 석대는 출생신고가 늦어졌다는 언급으로 보아 급우들보다 연상으로 추정되는데 국민학생 신분인 주제에 중학생들을 부리고 심지어 고등학생들과 섞여 다니는 것을 보면 영락없는 '''중학교 후반~고등학교 초반 나이'''다. 그 나이에 초등학교 5학년 시험에서 80점을 맞는다면... 게다가 다른 진짜 우등생들은 모든 과목에 시간을 투자하고도 90점 이상을 받을 수 있지만 자신은 나머지 과목을 다 대강대강 하고 두 과목에 공부를 몰빵해야만 겨우 90점대를 받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싸움도, 2차성징 및 신체 발달을 고려할 때 그 정도 나이대에서 2~3살 차이는 상당히 큰 차이라 초등학교에서 싸움 짱이 아닌게 더 이상하다. 웬만한 여고생이라고 해도 초등학교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는 당연히 싸움 짱이다. 과연 제 나이에 걸맞게 학교를 다녔어도 이런 식으로 군림할 수 있었을지 의문인 것이다.] 어쨌든, 엄연히 상위권 성적에 속하는 병태는 미술시간에 그림을 대신 그려주는 비교적 사소한 셔틀짓을 '''자발적으로''' 했기에 대리시험에서 제외되었던지라 이 사실을 쭉 몰랐다.[* 여기서 담임의 무관심을 알수 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필체의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고, 그리고 원래 상위권 아이가 무려 특기 과목에서 갑자기 낮은 점수를 받은데다 필체마저 다르면 의심을 할 법도 한데 작중 어떤 선생도 이를 의심하지 않는다. 또한 원하 역시 오랜 기간 석대한테 복종한 마인드가 그대로 드러나는데, 원하한테 병태가 이러면 너는 낮은 점수를 받으니 불합리한 거 아니냐고 묻자 원하는 "너는 두장을 그리니까 그럴 일이 없지 않느냐"면서 내심 병태를 부러워하는 말을 하면서도 "그런데 석대는 무조건 나한테만 부탁하지 않고 시험 마다 번갈아서 시키기 때문에 나름 공평하다. 또한 우등생 하나 한테 두 과목 이상을 부탁하는 일이 없으니 나는 다른 과목에서 다른 애들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으니 공평한거다."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석대를 옹호한다. 사실 원하 같은 경우 석대의 독재 체제에 워낙 오랜 시간 시달렸을테니 그렇다치고, 따지고보면 담임의 태도가 더 문제긴 하다.] 물론 석대가 병태를 특별취급 해준 것도 있지만. 점수를 아예 석대와 바꿔야 하는 다른 과목들과 달리 미술만큼은 예외적으로 빨리 그리면 두 장 그려서 낼 수 있으므로 석대 그림을 대신 그려주고도 자기 그림도 잘 그릴 수 있는 것.[* 원하 같은 경우 석대의 이름을 적어 시험지를 제출하고 석대가 원하의 이름을 적어내면 필연적으로 원하는 낮은 점수를 받을 수 밖에 없다. 반면 병태가 자신있어 하는 미술 같은 경우 그냥 정해진 시간 내에 두 장을 그려서 하나는 석대 것으로, 하나는 자기 것으로 내면 그만이기에 점수 손해가 없었다. 그래서 병태는 이런 부정행위를 몰랐던 것이다.] 덕분에 병태는 학급 2등은 확실하게 지켰고, 석대를 제외하면 급우들 중 유일하게 전교 10등 이내에 들어갔다. 원작 내용 중 보통 석대의 과목을 대신 시험치는 애들은 보통 그 과목에서 10점 이상은 기본적으로 손해보고 들어간다고 한다. 작중에서도 이 이야기를 들은 병태가 원하에게 '''"그럼 너는 15점이나 손해를 보잖아?"'''라며 경악한다. 하물며 그 시대는 [[중학교]]도 입시시험을 치고 들어가는 시대였으니 더욱 끔찍한 일이다. 병태는 이것을 교사들에게 고발해야 할지 고민한다. 모른 척 하기엔 찜찜하고, 그렇다고 고발에 성공해 교사들이 석대를 처벌해도 예전보다 더한 [[아싸]] 생활을 해야 될지도 몰랐고, 더욱이 [[라이터]] 사건의 실패를 겪은 적이 있었기에[* 얼추 요약하자면, 본래 석대는 다른 아이들 소지품 중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이 눈에 띄면 '그것 좀 빌려줘'라며 가져가곤 했다. 물론 말이 빌려달라는 것이지, 실질적으로는 빼앗아 차지하는 것이었고 그가 한번 가져간 물건은 결코 되돌아오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병태가 자신의 비리 고발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이때만큼은 빼앗은 라이터를 주인에게 돌려준 뒤 '잠시 빌렸던 것 뿐이다'로 어물쩡 넘어갔던 적이 있다. 물건 주인도 석대가 두려워 그의 말이 다 맞다며 [[지록위마|검은 것을 희다고 말해버리고]], 고발을 노리던 병태는 증거가 사라져 망신만 당해버렸다.] 일단은 함구하는 길을 택했다. 또한 석대가 다른 상위권 학생들의 발목을 잡는 것에 침묵하면 2등을 거저 얻을 수 있다는 이유도 있어서 일부러 모른 척을 택한 것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오후에 석대가 벌인 시험 뒤풀이에 따라가야 했기에 선생님에게 고발할 기회가 없었던 것도 이유였다. 석대는 그날의 뒤풀이를 거의 병태를 위한 자리 수준으로 만들었고, 권력을 맛본 병태는 석대의 체제에 안주하기로 했다. 실제로 그날 따라간 열 명 정도의 아이들은 각자 집에서 음식을 가져오게 하거나, 용돈으로 군것질거리를 사오게 하거나[* 심지어는 술 심부름을 시키는 등 호락호락한 심부름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모닥불용 장작을 주우러 보내놓고 병태는 그냥 옆에 앉히고 잡담이나 했다.[* 정황상 원하가 석대에게 병태와 나눈 이야기를 알렸을 것으로 보여진다. 병태도 자신의 기색이 심상찮다는 것을 엄석대가 눈치채고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한 일이라 추측했다.] 그리고 [[1960년|한 해가 지나 학년이 바뀌었다.]] 병태와 석대는 6학년 때도 같은 반이었고 서울에서 새로 부임한 젊은 남교사인 김 교사가 담임이 된다. 그런데 김 교사는 초반부터 이상한 분위기들을 여럿 느꼈다. 급장 선거를 할 때 [[만장일치]]로 석대를 뽑는 것이다. [[부정투표|총 61표 중 무효표 1표와 석대 본인의 표를 제외하면 전원 일치였다.]] 결과를 본 김 교사는 재투표를 지시하자 손을 쓴다고 쓴 게 다른 9명의 후보들에게 1표만 주고 자기에게 51표를 몰빵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인정은 하긴 했지만 묘한 분위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또한 명색이 2년간 한번도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아이가 정작 수업시간에 문제를 풀라고 시키면 몰라서 쩔쩔매는 것에도 의심을 가졌다. 선생님은 문제가 조금만 어렵다 싶으면 바로 석대에게 나와 문제를 풀게 했는데, 특히 한두 과목은 수월하게 풀면서 다른 건 전혀 못한다는 사실이 더욱 의심을 불렀다. 아이들이 담임교사가 아닌 석대에게 청소 검사를 비롯해서 모든 것을 검사받는 등 알려진 평판과 실제 행동이 전혀 다른 것 역시 의심을 증폭시켰다. 그 때문에 김 교사는 석대를 수상히 여기기 시작한다. 다른 교사들에게도 이야기를 하지만, 그들은 '자기가 잘 알아서 하는 학생이다', '성적도 1등, 청소도 1등, 운동도 1등인 학생이다', '석대 반은 뭐든 1등 반이다' 등등 여전히 둔감한 반응이다. 석대는 대리시험이 들킬 것에 대한 불안함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전교 1등 엄석대가 갑자기 성적이 떨어진다면 분명히 추궁을 받을게 확실한지라 대리시험은 포기할 수 없었고''', 나름대로의 술수를 부리며 감시망을 벗어나려 했지만 상술하였듯 새 담임 김 교사는 기존의 교사들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결국 새 학년이 된지 한 달 무렵 사고가 터졌다. 학교에서 시험을 하나 쳤는데, 석대의 시험지에서 '''다른 이름을 쓰다 지운 자국이 발견된 것'''이었다. 게다가 아이들 성적도 조금 이상했는데, 석대는 독보적으로 전교 1등을 한 것에 비해 다른 상위권 아이들은 전부 10등 밖으로 밀려난 것이었다. 암만 봐도 성적 조작이 확실하였기 때문에 김 교사는 예리한 직감으로 석대가 부정시험을 치렀음을 알게 된다. 이후 김 교사는 석대에게 [[빠따|무지막지한 체벌]]을 하고[* 무려 하키채로 29대나 맞았다. 그나마도 중간에 석대가 잘못을 인정했기에 여기서 멈춘 것이고 이 시점에서 이미 담임은 모든 정황을 확실하게 파악하였고 엄석대가 항복하지 않고 계속 버텼더라면 더 맞았을 것이다.], 결국 석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잘못… 했습니다."'''라며 처음으로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며, 그런 석대에게 김 교사는 교탁에 꿇어앉고 손을 들게 한다. 이어 김 교사는 석대의 대리시험 셔틀[* 국어 - 황영수, 수학 - 박원하]들을 불러내어 누가 셔틀을 시켰는지 질문했고 이미 석대가 약해진 것을 본 셔틀들은 [[명령을 따랐을 뿐|석대가 시켰다고]] 자백했다. 김 교사가 그들에게 기분이 어땠냐고 묻자 각자 죄스럽고 들킬까 봐 겁이 났다는 반응이었고, 이에 김 교사는 '자기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 모르고 부당함에 굴복한 것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놈들이다.'라고 일갈하며 이들에게도 분노하여 체벌한다. 결국 상술한 대로 김 교사는 석대 왕국을 완전히 토벌한다. 석대의 잘못을 출석번호대로 차례 차례 고발하라고 시키고, 아이들은 석대의 잘못들을 너도나도 꺼내 담임에게 일러바친다. 원작에서는 뒤로 갈수록 석대를 향한 '[[임마]]', '[[새끼(비속어)|새끼]]', '[[자식]]' 등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욕설]]들이 튀어나왔으며[* 그 시절에 존재하지 않았던 욕설이라는 게 아니다. 그 시절에도 청소년들의 욕설은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단, 해당 대목은 '감히 그 석대에게' 그런 욕을 한다는 것을 평소엔 상상도 할 수 없었다는 의미이며, '''그것도 담임교사 앞에서''' 저런 욕을 대놓고 내뱉는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작중 시점인 [[1960년대]]나 [[2020년대]]나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이 책은 엄연히 소설이지 기록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문열이 최대한 절제한 표현이 이 정도이고 만약 작가가 절제를 안 했더라면 더 심한 표현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나중에는 아예 이 정도 표현으로도 모자라서 쌍욕을 퍼부었다는 서술로 두루뭉실하게 넘어갔다.], 대화의 방식도 '''[[우디르급 태세전환|선생님에게 이르는 식에서 석대 면전에다 욕을 퍼붓는 식으로 변했다]]'''고 서술한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석대를 매도하는 와중에 병태만은 전학을 온 지 얼마 안 되어 잘 모른다는 핑계를 대며 석대의 잘못을 단 한 마디도 고발하지 않았다. 이때 다른 아이들은 병태까지 비난하나,[* [[군중심리]]에 의해 다른 급우들까지 모두 동참해 병태를 욕하며 정신적으로 다구리를 쳤다. '''이 역시 담임교사가 보는 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김 교사는 알겠다는 말만 하고 다음 아이에게 발언권을 넘긴다.[* 병태는 이 시점에서 오히려 석대 앞에서 누구보다도 아첨하고 심지어 자기가 석대에게 멍석말이를 당할 때도 방관하는 정도를 넘어 적극적으로 석대 편에서 자기를 괴롭혔던 학우들이 이제는 더 힘이 강한 담임 편에 서서 손바닥 뒤집듯 배신하는 모습을 경멸을 넘어서서 혐오에 가깝게 보고 있었다. 따라서 마지막까지 유일하게 석대 왕국에 남은 병태의 심리는 줏대 없이 자신의 안위만을 추구하는 반 아이들에 관한 반발 심리였다.][* 그리고 학우들의 추태가 다시 한번 드러나는데 병태가 자기들과는 달리 마지막까지 석대 왕국을 지키자 담임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옆에서 병태마저 고발하는 모습을 보인다. 병태가 석대에게 평소 더 좋은 대접을 받았기에 저런 행동을 한다느니....] 이런 병태의 행동에 대해서도 해석할 여지가 많은데, 이건 원작에서 그냥 설명해준다. 상술한 대로 비열한 학우들과 소신을 가진 자신은 다르다는 것. 그리고 "저 녀석들은 석대[* 비단 석대 뿐만 아니라 거대한 권력]한테 덤빌 배짱도 없이 휘둘린 주제에[* 최소한 병태는 한 학기 가량 석대의 위치를 위협했다. 게다가 석대에게 '''가장''' 비굴하게 굴던 놈들이 이제서야 '''가장''' 적극적으로 석대를 욕하고 있으니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실각하기 전에는 석대 밑에서 꿀 실컷 빨아놓고 석대가 박살나자 등 밟으면서 까대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다. 덧붙여 병태는 실제로도 '''의외로 석대의 악행에 대해 잘 모르기도 했다'''. 5학년 한 학기 동안 석대에게 반항하다 반에서 왕따가 되고 나머지 한 학기는 역으로 석대의 오른팔처럼 지내는 식이라서 속을 터놓고 지낼 친구는 없었다. 게다가 교활한 석대는 병태를 괴롭힐 때도 뒤에서 시켜서 음습하게 괴롭히는 식으로, 병태 앞에서는 악행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적이 없었다.[* 상술한 대로 병태가 박원하의 시험지 교대 관련 에피소드를 석대한테 항복하고 나서야 알아챘다는 사실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병태도 아는 어지간한 잘못은, 병태의 번호가 뒷번호이다 보니 이미 다른 애들이 다 말한 뒤였다. 그리고 김 교사는 아이들이 지난 날에 저질렀던 비열함의 값과 앞으로 삶에서 교훈의 값으로 모든 아이들에게 체벌 5대씩을 하였다. [[임시담임 선생님|석대와 셔틀들을 때릴 때와 '''똑같은 파워'''의 매질이었다고 한다.]] 결국 완전히 몰락한 석대는 새로운 급장 선거 도중 자신의 표가 하나도 나오지 않자 학교에서 뛰쳐나가고,[* 이때 나온 명대사가 "잘 해봐 이 개자식들아!!!!"다.] 이후에는 등교길에서 애들을 습격하며 끈질기고 집요한 복수를 하였고 아이들은 담임은 김 교사한테 고발하였다. 헌데 김 교사는 오히려 고발한 아이들을 심하게 나무랐다. 석대에게 당한 것을 일러바치는 아이들에게 오히려 "너희들은 손 묶어 놓고 있었어? 다섯 명이 한 명한테 하루종일 끌려다녀? 병신같은 놈들!" 하면서 '''"왜 네가 스스로 대항을 못 하고 어른의 힘을 빌리려 하느냐?"'''라면서 가차없이 비난하고 체벌을 가했다.[* 중요한 사실은, 이는 현대 기준으로는 엄연히 2차 가해 및 아동 학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다만 당시는 아직 야만적인 시대였는지라 그런식의 체벌이 비일비재했다. 전근대적 가치관에 사로잡힌 일부 부모나 선생들이 "왜 병신같이 맞고 다니냐, 너도 때리고 와라." 또는 "너가 알아서 해결하라."라고 말하는 경우와 일맥상통한다.] 아무튼 그렇게 김 교사 한테 2차 가해를 당한 아이들은 결국 이판 사판으로 석대한테 1대 다수로 덤볐고, 결국 석대를 누른다. 반 아이들 중 싸움을 잘 한다는 소전거리 아이들 다섯이 석대와 맞붙었다. 석대는 그날도 똑같이 아이들을 압도하였지만, 아이들이 5:1로 기를 쓰고 협공을 하니 석대도 결국 밀리고 도망쳤다.[* 어느 매체에서는 아이들 중 유일하게 무기를 챙기지 않은 박원하가 초반에 도망친듯 하다가 몰래 석대의 뒤에서 볼링공 크기의 돌덩이로 퍽치기를 하였고 박원하의 퍽치기에 리타이어한 석대는 신나게 밟혔다고 묘사된다.] 이후 미창에서도 똑같이 박살이 나고 결국 동네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김 교사는 당시 아이들에게 인기 있던 책인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용기 있는 사람들》[* JFK가 훌륭하게 생각했던 여덟 정치가의 이야기인데, 이들은 모두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옳다고 믿었던 것을 용기 있게 주장하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JFK는 이 책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을 복수에 성공한 아이들에게 선물한 다음, 반 아이들한테 그들을 굉장히 치켜세우는 식으로 아이들에게 앞으로의 인생 역시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라고 자극했다.[* 하지만 추후 이에 대해 병태는 석대의 독재를 끝낸 것이 자기들 스스로의 힘이 아닌 새로운 권력자(김 교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 독재에 의해 독재가 종말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씁쓸해하기도 한다. 확실히 김 교사가 석대의 폭거를 멈춘 인물이기도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그가 석대의 독재를 파괴한 방식은 엄연히 똑같은 독재였다.] 자취를 감춘 석대는 외조부모를 버리고 재가한 어머니가 계신 서울로 떠났다는 소문만이 들려왔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